
대지와 생명의 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고대 제천 의식의 비(非)인간중심적 생태 공명과 무용의 복원
1. 들어가며: 인간중심주의의 종언, 그리고 고대 춤사위의 재발견
오늘날 인류는 전례 없는 생태적 위기와 기후 재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자 무한한 자원의 창고로 여겨왔던 근대적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는 지구 생태계를 파탄으로 몰았고, 철학계와 예술계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과 신물질주의(New Materialism)를 강력하게 부르짖고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지구를 구성하는 수많은 비(非)인간 행위자(동물, 식물, 대지, 대기) 중 하나와 평등하게 엮인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포스트휴머니즘의 철학적 사조가 과연 완전히 새로운 것일까요? 놀랍게도 한국 고대 사회의 제천 의식인 부여의 ‘영고(迎鼓)’와 동예의 ‘무천(舞天)’,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샤머니즘적 춤사위 속에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온몸으로 생태적 공명을 이뤄낸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기 전, 동물과 대지의 리듬을 온몸으로 시뮬레이션하던 고대 제천 의식의 춤사위를 통해 오늘날 포스트휴머니즘 시대가 주목해야 할 생태적 무용의 원형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복원해 본다.
2. 영고와 무천: 춤으로 대지와 우주를 껴안았던 고대의 생태 축제
삼국지 ‘위서’ 동이전 등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 한민족의 국가들은 수확의 시기나 새해를 맞이할 때 온 백성이 모여 밤낮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거대한 제천 의식을 거행했다.
- 영고(迎鼓, 북을 맞이하다): 부여에서 행해진 영고는 우주적 생명의 근원인 북소리에 맞춰 하늘과 땅의 영혼을 맞이하는 축제였다. 여기서 북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악기가 아니라, 대지의 심장박동이자 비(非)인간 생명체들의 고동을 상징했다.
- 무천(舞天, 하늘에 춤추다): 동예에서 행해진 무천은 무리의 사람들이 산과 들로 올라가 온종일 춤을 추며 하늘과 대지의 경계를 지우는 의식이었다.
이러한 제천 의식에서 ‘춤’은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며 신을 경배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를 대기와 동물, 그리고 대지의 거대한 생태 리듬에 동기화시키는 유기적 매개체였다. 춤을 추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자기 중심적 자아를 해체하고, 자연의 일부로 환원되는 엑스터시(Ecstasy, 망아경)를 경험했다.
3. 샤머니즘적 춤사위의 생태 공명: 동물과 대지의 시뮬레이션
고대 샤머니즘 의식과 굿판에서 무당(샤먼)이 추는 춤은 철저하게 비인간중심적 시뮬레이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샤먼의 몸짓은 단순한 인간의 안무가 아니라, 숲속의 짐승, 날아오르는 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리고 깊은 대지의 진동을 신체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3.1. 신체 전유를 통한 타자(비인간)와의 공감
호랑이 굿, 말굿, 혹은 새의 비상을 형상화한 무속 춤사위에서 샤먼은 동물의 움직임을 단순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척추와 근육, 호흡은 동물의 생태적 감각을 온전히 자신의 신경계로 불러들여, 인간과 동물의 위계적 서열을 무너뜨린다.
🌿 대지의 짓밟기가 아닌 ‘디딤’의 철학
한국 전통 무용과 굿의 발 디딤(구름디딤, 짓밟기가 아닌 어르는 디딤)은 대지를 지배하고 고정하려는 서구적 보행과 다르다. 그것은 대지의 숨결과 나의 발바닥 촉각이 서로를 감싸 안으며 교감하는 ‘생태적 햅틱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샤머니즘적 춤사위 속에서 인간의 몸은 자연을 착취하는 주체가 아니라, 자연의 소리를 울려주는 거대한 ‘공명통(Resonance Box)’으로 기능했다.
4. 포스트휴머니즘의 시선으로 본 고대 춤사위의 현대적 복원
철학자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나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주장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핵심은 ‘함께-되기(Becoming-with)’이다. 인간 혼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는 없으며, 우리는 언제나 미생물, 동물, 기후, 대지 등 수많은 타자와 얽혀(Entangled) 살아간다는 것이다.
고대 제천 의식의 춤사위는 바로 이 ‘함께-되기’의 가장 원초적이고 육체적인 실천이었다.
4.1. 현대 무용과 생태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
- 무대 중심주의의 탈피: 인간 관객과 인간 무용수만의 공간이었던 극장을 벗어나, 숲, 바다, 대지 위에서 자연의 비(非)인간 행위자(나무의 흔들림, 바람의 저항, 새의 울음소리)와 즉흥적으로 교감하는 생태 무용(Eco-Dance)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 안무의 탈-인간화(De-anthropocentrizing Choreography): 무용수가 안무를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경사도, 호흡의 파동, 공기의 흐름에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위탁하는 비선형적 움직임의 복원이 필요하다.
영고와 무천의 북소리가 현대의 예술적 감수성과 결합할 때, 춤은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생태적 치유의 언어로 부활할 수 있다.
5. 맺음말: 대지와 숨을 맞추는 생태적 몸짓으로의 회귀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오만함이 지구를 위기로 몰아넣은 지금, 우리는 다시 고대의 숲으로, 영고와 무천의 북소리가 울리던 제천 의식의 장소로 눈을 돌려야 한다.
동물의 호흡을 흉내 내고, 대지의 진동에 발바닥을 맞추던 샤머니즘적 춤사위는 낡은 미신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법을 몸으로 기억했던 가장 지혜로운 포스트휴먼적 생태 선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추어야 할 춤은 자연을 지배하는 기교의 춤이 아니라, 대지와 함께 숨 쉬는 생태적 공명의 춤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