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국악협회 이사장이야" 의상 제작자 수장의 권위주의와 국악계 심사 비리의 현주소
대한민국 전통 예술의 맥을 잇고 수만 명의 국악인을 대변해야 할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는 수년째 깊은 파행과 공정성 논란으로 국악계 안팎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최근 전직 이사장의 퇴임으로 인적 쇄신의 첫발을 뗐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과거 협회가 보여준 권위주의와 전문성 상실의 단면은 여전히 많은 전공자에게 깊은 흉터로 남아있습니다.
실제로 몇 년 전 서울 한국국악협회 콩쿠르 현장에서 직접 목격되거나 전해진 상징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협회의 수장이었던 인물은 수십 년간 무대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해 온 의상실 출신의 인물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 "미스터 리 선생님 아니세요?"라고 묻자, 그는 거들먹거리며 "나 국악협회 이사장이야!"라고 소리치며 직함을 내세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찍은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의 권력과 인맥을 과시하기 바빴습니다. 평생 가락과 소리, 춤을 연마해 온 전문 예술인들의 경연장에서 ‘의상 제작자’라는 본업의 정체성 대신 ‘권력자’로서의 지위를 뽐내던 이 모습은, 당시 한국국악협회가 얼마나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합니다.
1. 장관 사진이 권력이 되던 국악계의 모순된 현실
전통 무대 의상 역시 국악 공연을 완성하는 훌륭한 문화적 요소임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수만 명의 국악 전공자를 대표하고 그들의 실력을 올바르게 평가해야 하는 단체의 수장이 음악적·예술적 전문성이 아닌, 정관계 인맥과 정치력을 앞세워 자리를 차지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구태의연한 태도는 협회 행정의 사유화를 불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에서 땀 흘린 전공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수장의 전문성 결여는 산하 경연대회의 ‘비전공자 심사위원 위촉’이라는 치명적인 폐단으로 직결되었습니다. 판소리의 미세한 시김새(음의 꺾임), 산조의 호흡, 전통 무용의 깊은 춤사위는 평생을 바쳐 전문 교육과 수련을 거친 이들만이 온전히 분별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계파 갈등과 파벌 정치 속에서 "우리 편에게 점수를 줄 사람"이나 "지도부의 입김에 순응할 사람"을 심사석에 앉히다 보니, 정작 해당 분과에 지식이 전무한 비전문가들이 타인의 평생 노력을 채점하는 황당한 현실이 자행된 것입니다.
2. 비전공자 심사와 권력 과시가 초래한 치명적인 부작용
전문성을 상실한 '깜깜이 심사'와 정관계 인맥을 방패 삼은 권력 카르텔은 국악 생태계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렸습니다.
- 경연 결과의 불공정성과 신뢰 추락: 가야금 전공자가 거문고나 대금을 심사하거나, 국악과 완전히 무관한 인사가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예술적 변별력이 사라졌습니다. 이로 인해 참가자들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했고 대회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 청년 국악인들의 좌절과 이탈: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원까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수련한 젊은 전공자들이 예술 외적인 요인과 비전문가의 주관적인 칼날에 의해 낙방하며 깊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이는 국악계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을 스스로 내쫓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정부 훈격의 가치 훼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이나 대통령상 등이 걸린 최고 권위의 대회마저 '품앗이 심사'와 '인맥 과시'로 얼룩지면서 대한민국 전통 예술의 가치 자체가 대중에게 평가절하되었습니다.
3. 과거의 과오를 딛고 국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
지금은 비록 문제의 이사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체제를 맞이했다고 하지만, 과거의 악습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다면 언제든 제2의 사태가 재발할 수 있습니다. 국악계가 진정한 예술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시스템 개혁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① 심사위원 자격 조건의 엄격한 법제화 및 경계 설정
'국악'이라는 모호한 틀로 묶어 교차 심사하는 방식을 원천 차단해야 합니다. 세부 분과별로 최소 이수자 이상, 관련 분야 전공 학위 소지자, 실연 경력 15년 이상 등 객관적인 자격 가이드라인을 명문화해야 합니다. 특히 무대 의상, 소품, 음향 등 지원 예술 분야 인사는 행정적 인프라 지원에만 집중하게 하고, 실연을 평가하는 심사권에서는 철저히 배제하는 명확한 경계 설정이 필요합니다.
② 외부 기관 주도의 '통합 인력 풀' 및 랜덤 추첨제
협회 지도부가 자의적으로 심사위원을 지명하는 구조를 깨야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나 국립국악원 등 공신력 있는 제3의 기관이 전국의 국악 전공 교수와 원로 예술인들을 포함한 '전국 국악 심사위원 통합 인력 풀'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후 대회 직전 컴퓨터 무작위 추첨(랜덤)을 통해 심사위원을 배정함으로써 사전 결탁이나 인맥의 고리를 완벽히 잘라내야 합니다.
③ 블라인드 심사 및 '서면 심사평 작성' 의무화
참가자의 학연, 지연, 스승의 이력을 일절 알 수 없도록 무대와 심사석 사이에 가림막을 치는 '블라인드 심사(스크린 경연)'를 전면 확대해야 합니다. 또한, 심사위원이 매긴 점수를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점수 부여 이유를 담은 '서면 심사평 작성'을 의무화해야 합니다. 비전공자는 전문적인 심사평을 기술할 수 없으므로 함량 미달 인사를 걸러내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될 것입니다.
결론: 자리를 탐하기 전에 예술의 본질을 돌아볼 때
"나 국악협회 이사장이야"라며 장관과의 사진을 과시하던 씁쓸한 풍경은, 과거 협회가 예술의 깊이보다 '자리와 이권, 정치적 인맥'에 얼마나 매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단면입니다.
의상실 출신의 회장이 물러난 지금이 한국국악협회에게는 체질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과거의 구태를 완전히 청산하고, 철저한 전문성 검증과 투명한 시스템 개혁을 이뤄내야 합니다. 자리의 무게를 아는 올바른 지도부와 공정한 심사 제도가 정착될 때, 비로소 청년 국악인들의 땀방울이 정당하게 보상받고 대한민국 국악의 밝은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