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유자 명패 뒤에 가려진 거친 숨소리: 무형문화재 전승 체계 속 '남성 전수자 중심'의 권력 구조가 여성 이수자의 예술적 주체성에 미치는 영향과 신체 탈환의 기록 (무용을사랑합니다)
📅 작성일: 2026년 10월 10일
✍️ 글쓴이: 무용 현장 연구원 / 공연 예술 연출가
🏷️ 카테고리: 무형문화재전승구조, 남성중심권력, 여성무용수주체성, 전통무용이가부장제, 소마틱스여성해방, 신체정치학, 무용기호학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의 예능을 전수받기 위해 모여든 전수관의 연습실, 수십 년간 다져진 전통의 묵직한 공기 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세월의 깊이를 담은 장구 소리만이 아닙니다. 그 소리 이면에는 전수 교육 조교와 보유자, 그리고 오랜 세월 관행처럼 이어져 온 ‘남성 전수자 중심’의 서열화된 권력 구조가 엄혹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체 전통 무용 및 예능 이수자의 대다수는 여성들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주요 직위나 예능의 본질을 결정하는 전승 체계의 정점에는 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군림해 왔습니다. 무형문화재 전승 과정의 폐쇄적 권력 구조가 묵묵히 춤을 추어온 여성 이수자들의 예술적 주체성과 신체 감각을 어떻게 억압해 왔는지 그 구조적 모순을 해부해 봅니다.
1. 무형문화재 전승 체계에 내재된 남성 중심적 권력의 두 얼굴
국가 지정 전통 예술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달한다는 명목 아래 운영되는 무형문화재 전승 시스템은 겉보기엔 순수한 예술 계승의 장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철저한 가부장적 위계가 작동합니다.
- 노동은 여성이, 권력은 남성이 점유하는 구조: 실제 전수관을 지키고, 연습을 주도하며, 후배들을 가르치는 실무적 노동의 80~90%는 여성 이수자들과 전수자들이 담당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의사결정, 이권 배분, 그리고 국가 지정 보유자 타이틀로 이어지는 관문에서는 남성 중심의 인맥과 가부장적 네트워크가 유리하게 작용해 왔습니다.
-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의 위계적 폭력: 전통 예술 전승 과정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스승(주로 남성 보유자)의 지시는 곧 법으로 통용되며, 이 과정에서 여성 이수자들은 자신의 고유한 신체 해석이나 미학적 주장을 펼치지 못한 채 일방적인 동작 복제품으로 길들여지게 됩니다.
2. 권력 구조가 여성 이수자의 신체와 주체성에 미치는 3가지 억압 메커니즘
남성 중심적 전승 체계는 여성 이수자들이 무대 위에서 구사하는 신체 감각과 예술적 정체성에 심각한 왜곡을 불러일으킵니다.
① 신체적 주도권의 박탈과 ‘틀에 박힌 재현’ 강요
여성 이수자들은 자신의 호흡과 신체 유연성에 맞는 자율적 춤사위를 발전시키기보다, 남성 보유자가 규정해 놓은 '가장 전통적인 정답'의 틀에 자신의 몸을 억지로 꿰맞추어야 합니다. 이는 신체의 능동적 주체성을 마비시키고, 춤을 추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타자의 시선(권력의 검열)을 의식하게 만듭니다.
② 주변화된 노동과 목소리의 소거
연습실 바닥을 쓸고, 의상을 다듬고, 행사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예능의 원형을 독점하고 해석할 권리에서는 배제되는 구조는, 여성 이수자들을 '독창적 예술가'가 아니라 '부속 행정 인력'으로 전락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예술적 좌절과 신체적 피로감은 철저히 침묵당합니다.
③ 가부장적 미학의 내면화
남성 중심적 시선이 선호하는 '조신하고 절제된 여성성' 혹은 '정형화된 한(恨)의 정서'를 훌륭하게 모방해 낼 때만 칭찬을 받는 환경 속에서, 여성 이수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부장적 젠더 규범을 내면화하며 스스로의 거칠고 역동적인 신체 에너지를 억누르게 됩니다.
3. 억압의 틀을 깨고 예술적 주체성을 탈환하기 위한 시도
그렇다면 이 거대한 무형문화재 전승 권력에 맞서 여성 이수자들이 자신만의 예술적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전통의 원형에 대한 주체적 재해석: 스승이 가르쳐준 동작을 그대로 복사하는 기계적 전승을 넘어, 춤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비판적으로 공부하고 자신의 신체 호흡에 맞춰 능동적으로 변주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 여성 예술가들 간의 연대와 목소리 확장: 폐쇄적인 전수관 권력 구조 안에서 고립되어 각자 참아내는 대신, 여성 이수자들과 연구자들이 연대하여 불합리한 전승 관행을 고발하고 동등한 예술적 발언권을 요구하는 공론장을 형성해야 합니다.
- 신체 소마틱스를 통한 감각의 복원: 가부장적 권력이 주입한 규격화된 몸의 긴장을 풀고, 아랫배 단전의 호흡과 맨발의 접지를 통해 타자의 시선에 오염되지 않은 '나만의 진짜 춤사위'를 복원하는 신체적 치유 작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마무리하며
무형문화재 전승 과정에 도사린 '남성 전수자 중심'의 권력 구조는 단순한 세대 갈등이나 개인의 부조리가 아니라, 한국 전통 예술계 깊숙이 뿌리내린 가부장적 신체정치학의 문제입니다. 묵묵히 땀 흘리며 전통의 명맥을 지탱해 온 여성 이수자들이 타자의 시선과 억압적 위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숨결과 발디딤으로 온전한 예술적 주체성을 회복할 때—비로소 우리의 전통 무용은 박제된 문화재가 아닌 살아 숨 쉬는 해방의 예술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