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중학교 시절, 우연히 발을 들였던 최창덕 선생님의 무용 학원은 제 인생의 나침반을 바꾸어 놓은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그저 호기심 많은 아이였던 저는 그곳에서 한국무용이라는 아름다운 신세계를 만났고, 그것은 평생을 이어갈 무용가로서의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이후 무용은 제 삶의 전부가 되었고, 끊임없는 연습과 열정의 시간들이 쌓여 대전시립무용단 수석 단원이라는 과분하고도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국무용의 깊은 호흡과 춤사위를 무대 위에서 펼쳐왔습니다.
오늘은 제 반평생의 삶이자 예술이었던 한국무용의 매력, 그리고 20년간 수석 무용수로 무대를 지키며 깨달은 예술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무용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 최창덕 무용 학원
모든 위대한 여정에는 시작점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중학교 시절 찾아간 최창덕 선생님의 학원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접한 한국무용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하나의 깊은 호흡을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최창덕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에서 저는 한국무용의 가장 기초가 되는 ‘정중동의 미학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는 한국무용의 독창적인 매력은 어린 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버선코의 선, 사뿐히 딛는 발걸음, 그리고 공기를 가르는 디딤새 하나하나가 예술이 되는 과정을 보며 저는 무용가로서의 꿈을 단단하게 키워나갔습니다.
대전시립무용단 수석 무용수로서의 20년
꿈을 향해 달린 시간은 배신하지 않았고, 저는 대전시립무용단의 일원이 되는 기쁨을 맞이했습니다. 더 나아가 단체를 이끄는 수석 무용수의 자리에 올라 20년간 무대를 지키게 된 것은 제 인생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시립무용단에서의 20년은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무수한 땀방울과 인내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석 무용수라는 자리는 단순히 춤을 잘 추는 것을 넘어,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고 동료 무용수들과의 호흡을 이끌어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였습니다.
-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용: 승무, 살풀이춤, 한량무, 진쇠 춤, 진도북 춤 등 깊은 역사성을 지닌 전통 춤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창작 무용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 무대 위에서의 호흡: 한국무용은 '단전에서 나오는 호흡'의 예술입니다. 20년 동안 매일같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관객들과 무대 위에서 말 없는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내가 느낀 한국무용의 진짜 매력
많은 분이 한국무용이라고 하면 '정적이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무용은 그 어떤 춤보다 역동적이고 감정의 진폭이 큰 예술입니다.
한(恨)을 흥(興)으로 승화시키는 예술
한국무용의 핵심은 마음속 깊은 슬픔과 한을 그대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신명 나는 흥으로 풀어내는 데 있습니다. 슬픈 선율 속에서도 어느새 어깨춤이 들썩이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죠. 이는 우리 민족의 회복탄력성과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예술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곡선과 여백의 미학
서양의 발레가 직선적이고 중력을 거스르는 도약의 예술이라면, 한국무용은 철저히 땅를 딛고 선 곡선과 여백의 예술입니다. 팔사위 하나를 뻗더라도 직선으로 뻗지 않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동작과 동작 사이의 '멈춤(여백)'에서 더 큰 감동을 자아냅니다.
20년의 무대를 내려놓으며: 앞으로의 발걸음
중학생 시절의 첫 디딤부터 대전시립무용단 수석으로서의 20년까지, 제 인생의 모든 페이지에는 한국무용의 숨결이 녹아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무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제 춤을 사랑해 주신 관객분들과, 늘 초심을 잃지 않게 붙잡아 준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 덕분이었습니다.
비록 시립무용단 수석으로서의 공식적인 긴 여정은 한 단락을 지었을지라도, 제 춤 인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무대 위에서 쌓아온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후배를 양성하는 데 힘쓰고자 합니다.
우리의 전통 춤이 가진 힘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앞으로도 한국무용의 대중화와 발전을 위해 저만의 발걸음을 묵묵히 이어 나가겠습니다